"희생으로 국가에 헌신한 무연고 전쟁영웅" '국가유공자 등록'으로 예우를 완성하다
발표일
2026.06.25
부처
국민권익위원회
"희생으로 국가에 헌신한 무연고 전쟁영웅"
'국가유공자 등록'으로 예우를 완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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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이 없는 故 김선일 소령에게 정부 직권으로 국가유공자 등록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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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5일) 국립서울현충원 추모식에서 국가유공자 증서 헌정(獻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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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국가보훈부 등 정부 합동으로 무연고 전몰군경 전수조사를 위한 범정부추진단 구성 추진
□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정일연, 이하 국민권익위)는 6·25전쟁 발발 76주년인 오늘(25일), 1951년 1월 1일 경기도 양주지구 전투에서 전사하여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故 김선일 소령 추모식을 개최하였다.
□ 故 김선일 소령은 1921년 7월 24일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읍에서 태어났다. 결혼 후 임신한 아내를 고향 의주에 남겨둔 채, 1947년 단신으로 남하하여 육군사관학교(제8기)에 입학하였고, 1949년 5월 23일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그의 결단은 가족과의 이별이었으나 조국 수호를 향한 헌신의 첫걸음이었다.
그는 육군 제1사단 제15연대에 소속으로 개성·문산·봉일천 방어작전, 낙동강 방어선 다부동 전투, 평양 탈환 작전, 운산 북방 중공군 격퇴 등 6·25전쟁 발발 직후 최전선에서 전장을 누볐다.
그러던 중 1951년 1월 1일, 태천·평양·고랑포를 경유하는 철수작전 중 경기도 양주지구 전투에서 29세의 나이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그의 전쟁 공헌과 살신보국 정신을 기려 충무무공훈장(중위, 1950년)과 화랑무공훈장(대위, 1951년)을 수여하였으며, 2021년 12월에는 대위에서 소령으로 추서되었다.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 55묘역 8판 2655호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임신한 아내는 고향 의주에 남겨진 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생이별하였고, 이로 인해 직계 유가족이 없어 국가유공자 신청 자체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수많은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인정받아 두 개의 무공훈장 수여가 결정되었고 전장에서 장렬히 전사한 전쟁영웅이 75년간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지 못한 채 잊힌 것이다.
□ 작년 8월, 故 김선일 소령의 외조카(누나의 아들) ㄱ씨가 국민권익위에 고충민원을 제기하였다. "외삼촌이 6·25 전쟁에 전사하여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음에도 등록을 신청할 유가족이 없어 국가유공자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라는 내용이었다.
국민권익위는 관계기관 자료 조회와 의견 수렴에 착수하였고, 작년 11월 故 김선일 소령이 국가유공자로 미등록 상태임을 공식 확인하였다.
이 사례가 단순한 개인 민원에 그치지 않고 광범위한 제도적 사각지대의 단면임을 인식한 국민권익위는 올해 1월, 6·25 무연고전몰군경의 국가유공자 직권등록을 위한 기획조사에 착수했다.
국가보훈부는 관계 법령에 따라 직계 유가족이 없는 경우 정부 직권으로 국가유공자 등록이 가능하다는 검토 결과를 회신하였으며, 이에 따라 올해 6월 故 김선일 소령의 국가유공자 직권등록이 확정되었다.
□ 국민권익위는 6·25전쟁 발발 76주년이자 故 김선일 소령의 전사일 기준 75주년을 맞아, 오늘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추모식을 개최하였고, 국가보훈부는 국가유공자 증서를 故 김선일 소령에게 헌정(獻呈)했다.
또한 국민권익위와 국가보훈부는 故 김선일 소령 사례에서 드러난 국가유공자 등록 관련 제도 공백을 구조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국립묘지 등에 안장된 6·25 무연고전몰군경의 국가유공자 직권등록을 위한 범정부추진단 구성·출범을 추진한다.
□ 국민권익위 정일연 위원장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잊힌 분들이 아직 많다. 국가는 그분들을 끝까지 찾아 합당한 예우를 드려야 할 의무가 있다. 전수조사와 범정부추진단을 통해 단 한 분의 전쟁영웅도 빠짐없이 국가유공자에 등록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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